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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창간으로 민족 언론이 태동한 날, 연암 박지원이 세상에 눈뜬 날 — 3월 5일 한국사 속 오늘

1920년 일제의 검열 아래서 민족의 목소리를 담아낸 조선일보가 첫 호를 찍어냈고, 183년 전 같은 날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 연암 박지원이 한양에서 태어났다. 3월 5일, 한반도에서는 '기록'과 '저항'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선명하게 새겨진 날이다.

🇰🇷 한국의 오늘 TOP 5

1. 조선일보 창간 — 일제하 민족 언론의 출발 (1920년)

배경: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 총독부는 무단통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했다. 그 일환으로 조선인 발행 신문의 허가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 민중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매체가 절실했고, 대정실업친목회가 자본을 모아 신문 창간에 나섰다.

내용: 1920년 3월 5일, 조선일보가 서울에서 창간되었다. 같은 해 동아일보(4월 1일)와 함께 일제강점기 민족 언론의 양대 축을 이루게 된다. 창간 직후인 4월 28일, 영친왕과 일본 왕족 마사코(이방자)의 강제결혼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 즉시 압수당하는 등 일제의 검열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정간과 발행정지를 겪으면서도 한글 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기여했다.

의미: 조선일보의 창간은 단순한 신문 발행을 넘어, 식민지 조선인이 자기 언어로 세상에 말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한국 최장수 일간지로, 한국 언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정표다.


2.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 (2015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출처: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배경: 2015년 초, 한반도 정세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 조찬 강연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고, 마크 리퍼트 대사가 초청 연사로 참석했다.

내용: 2015년 3월 5일 오전 7시 40분경, 문화운동단체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이 연회장에 진입해 리퍼트 대사의 얼굴과 왼팔을 흉기로 공격했다. 대사는 얼굴에 80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범인 김기종은 현장에서 즉시 제압되었으며, "전쟁연습 반대"를 외쳤다. 리퍼트 대사는 병원에서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며 한미동맹의 건재를 강조했다.

의미: 이 사건은 한미 관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역설적으로 양국 국민 간의 연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외교관 안전 문제와 행사장 보안의 허점이 심각하게 논의되었고, 이후 외교 행사의 보안 수준이 대폭 강화되었다.


3. 연암 박지원 출생 —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소설가 (1737년)

연암 박지원 초상
📷 연암 박지원 초상화 (출처: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배경: 18세기 조선은 성리학의 경직된 체제 속에서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었다.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난 박지원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문재를 보였으나, 과거 시험에는 의도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내용: 1737년 3월 5일(음력 2월 5일), 한양 서부 반송방에서 태어난 박지원은 북학파 실학의 거두로 성장했다. 1780년 청나라를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열하일기》를 저술했고,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 조선 사회 개혁의 청사진이 되었다.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의 소설에서 양반 사회의 위선과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했다.

의미: 박지원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며 상업과 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한 선구적 지식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제자 박제가, 이덕무 등에게 이어져 조선 후기 사회 변혁의 사상적 토대를 이루었다. 한국 문학사에서도 근대적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4.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브랜드 발표 (1987년)

배경: 1980년대 한국 자동차 산업은 급성장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현대 엑셀의 미국 시장 성공에 자극받은 기아자동차는 소형차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확대하기 위해 마쓰다와의 기술 제휴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형차 개발에 착수했다.

내용: 1987년 3월 5일, 기아자동차는 서울 COEX에서 자사의 새로운 소형차 브랜드 '프라이드(Pride)'를 공식 발표했다. 마쓰다 121(포드 페스티바)을 기반으로 개발된 프라이드는 경제적인 연비와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출시 후 내수 시장은 물론 수출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기아자동차의 대표 모델이 되었다.

의미: 프라이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모델이다. '마이카 시대'의 개막을 알린 차량 중 하나로, 한국인의 자동차 생활 문화를 바꾼 차였다. 이후 기아자동차가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5. 대전한화생명볼파크 개장 (2025년)

배경: 대전의 기존 야구장인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은 1964년 건립된 이래 60년 넘게 사용되며 노후화가 심각했다. 한화 이글스 팬들의 열정에 비해 구장 시설은 크게 뒤처져 있었고, 대전시와 한화그룹은 신축 구장 건립을 추진했다.

내용: 2025년 3월 5일, 대전 서구에 총 사업비 약 3,000억 원을 투입한 대전한화생명볼파크가 개장했다. 약 2만 석 규모의 최신식 야구 전용 구장으로, 루프탑 좌석, 프리미엄 라운지, 최첨단 전광판 등 팬 경험을 극대화한 시설을 갖추었다. 한화 이글스의 새로운 홈구장으로 KBO 리그의 관전 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의미: 대전한화생명볼파크는 단순한 야구장을 넘어 지역 랜드마크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대전 도심 재생과 스포츠 인프라 현대화의 상징으로, KBO 리그 전체의 구장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고, 위대한 성취에서 영감을 얻는 것 —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역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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