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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돈의 피가 하얗게 솟구친 날,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가 태어난 날 — 3월 11일 한국사 속 오늘

527년 신라 왕궁에서 한 청년의 목이 떨어지자 붉은 피 대신 하얀 젖이 한 길 넘게 솟구쳤다. 1886년 같은 날, 훗날 캔버스 위에 조선의 빛을 처음으로 담아낼 아이가 한성부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3월 11일, 한반도의 시간은 순교와 창조, 대립과 화해 사이를 오가며 역사의 결을 새겨왔다.

🇰🇷 한국의 오늘 TOP 5

1. 이차돈의 순교, 신라가 불교를 품다 (527년)

6세기 초 신라는 고구려·백제에 비해 불교 수용이 늦었다. 고구려는 372년, 백제는 384년에 이미 불교를 공인한 반면, 신라는 토착 신앙을 고수하는 귀족들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있었다. 법흥왕은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사상적 통일을 이루고자 했지만, 대신들의 반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때 왕의 근신이었던 이차돈(異次頓)이 나섰다. 22세의 이 청년은 왕에게 "저를 죽여 대신들의 반발을 잠재우소서"라고 청했다. 법흥왕은 대신들 앞에서 이차돈이 거짓 왕명을 전했다는 구실을 만들어 처형을 명했다. 이차돈은 죽기 직전 "부처께서 계신다면 내가 죽은 뒤 이적(異蹟)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전승에 따르면, 그의 목이 베어지자 붉은 피가 아닌 흰 젖이 한 길 넘게 솟구쳤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꽃비가 내렸다.

이 사건 이후 대신들의 반대는 사그라들었고, 법흥왕은 마침내 불교를 공인했다. 이차돈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며, 이후 신라가 삼국통일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불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출생 (1886년)

고희동 화백 사진
📷 고희동 화백 (출처: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1886년 3월 11일, 한성부에서 태어난 고희동(高羲東)은 구한말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뒤 궁내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궁을 드나드는 서양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면서 서양화에 눈을 떴고, 1905년 을사조약의 충격으로 관직을 떠나 미술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

1908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해 한국인 최초의 서양화 전공자가 되었다. 당시 친구들은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그림이냐"며 조소했고, 일본인들은 유화를 본 적도 없는 한국인이 서양화를 배우러 왔다며 이상하게 보았다. 1915년 귀국 후 스케치를 나가면 엿장수나 담배 장수로 오인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고희동은 1918년 최초의 근대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를 결성하고, 중앙고보·휘문·보성·중동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한국 근대미술의 씨앗을 뿌렸다. "미술"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의 귀국을 알리는 신문 기사에 처음 등장했을 만큼, 그는 한국 미술사의 기원 그 자체다.


3. KBS 라디오서울 폐국 — 한 시대의 전파가 꺼지다 (1991년)

1991년 3월 11일, KBS 라디오서울(AM 792kHz)이 공식 폐국되었다. 1973년 한국방송공사 출범과 함께 탄생한 이 채널은 "라디오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약 18년간 한국인의 귀를 사로잡아왔다.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방송 구조 개편이 진행되면서 KBS는 채널 통폐합을 결정했다.

당시 한국의 방송 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함께 민영방송이 활기를 띠었고, FM 라디오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AM 방송의 청취율은 하락세를 걸었다. KBS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복되는 AM 채널을 정리하기로 했고, 라디오서울이 그 대상이 되었다.

라디오서울의 폐국은 한국 방송사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종막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AM 라디오가 지배하던 시대가 저물고, FM과 TV, 나아가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4. 북한, 한국전쟁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2013년)

2013년 3월 11일, 북한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백지화를 공식 선언했다. 이 선언의 배경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 2094호가 있었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국제사회의 제재가 한층 강화되자 북한은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이래 60년 가까이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를 지탱해온 유일한 법적 장치였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무효"라며 판문점 직통전화를 차단하고,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출입을 통제했다. 한반도의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고, 미국은 B-52 전략폭격기와 B-2 스텔스폭격기를 한반도에 전개하는 무력시위로 대응했다.

이 위기는 수개월 뒤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었지만, 정전협정의 취약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5. 한국-캐나다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2014년)

2014년 3월 11일, 한국과 캐나다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최종 타결을 공식 발표했다. 양국은 2005년 7월 협상을 개시한 이래 약 9년에 걸친 긴 여정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13차례의 공식 협상 라운드를 거치며, 농업·자동차·서비스 등 민감 분야에서의 이견을 좁혀나갔다.

한-캐나다 FTA는 한국에 캐나다산 천연자원(에너지, 광물)의 안정적 수입 통로를 열어주었고, 캐나다에는 한국산 자동차·전자제품의 시장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협정 발효 후 양국 교역액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한국은 이 협정으로 북미 시장과의 통상 네트워크를 한-미 FTA에 이어 한층 강화했다.

한-캐나다 FTA는 한국의 글로벌 FTA 전략에서 중요한 퍼즐 조각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52개국과 FTA를 체결한 세계 최대 FTA 네트워크 보유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고, 위대한 성취에서 영감을 얻는 것 —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역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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