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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부인이 대학 사택에서 총에 맞은 날, 권력의 어둠이 한강변을 덮은 날 — 3월 17일 한국사 속 오늘

1949년 연희대학교 사택에서 울린 총성, 1970년 서울 한강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살인… 3월 17일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과 함께 대중문화의 새 장을 연 날이기도 하다. 오늘 이 날에 일어난 다섯 가지 사건을 되짚어본다.

🇰🇷 한국의 오늘 TOP 5

1. 에델 언더우드 여사, 연희대학교 사택에서 피살되다 (1949)

배경: 언더우드 가문은 한국 근대 교육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 1세는 1885년 조선에 들어와 경신학교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의 설립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의 아들 호레이스 호톤 언더우드(원한경) 역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연희대학교 교수이자 교육 행정가로 활동했다. 에델 반 와그너 언더우드는 호레이스 호톤의 배우자로, 해방 후 혼란한 한국 사회에서 남편과 함께 연희대학교 교내 사택(현 언더우드 기념관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다.

내용: 1949년 3월 17일, 에델 언더우드 여사가 연희대학교 교내 사택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당시 한국은 해방 직후 좌우 이념 대립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으며, 대학 캠퍼스도 이러한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60여 년간 한국을 위해 헌신한 언더우드 가문의 일원이 한국 땅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범인의 정확한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의 혼란한 정치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의미: 이 사건은 해방 후 한반도가 겪고 있던 이념적 혼란과 치안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근대화에 한평생을 바친 선교사 가문의 비극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해방 공간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2. 이강학 치안국장, 마산 사건에 '공산당 배후설' 발표 (1960)

배경: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부는 제4대 대통령·제5대 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3인조·9인조 공개투표, 4할 사전 투표, 완장 부대 동원 등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투표율은 97%에 달했고, 야당 참관인들은 투표소에서 쫓겨났다. 이에 격분한 마산 시민들은 3월 15일 당일부터 거리로 나와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였다.

내용: 1960년 3월 17일, 당시 치안국장 이강학은 마산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대해 놀라운 발표를 했다. 그는 "마산 사건은 공산당의 수법과 비슷하며, 배후에 공산당 개재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정권에 불리한 민주화 요구를 '빨갱이' 프레임으로 덮으려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이 발표는 국민적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고, 마산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꺾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의미: 이강학의 '공산당 배후설'은 이승만 정권이 민주주의적 요구를 탄압하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도구화한 대표적 사례다. 이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면서 전국적인 4·19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산의 3·15 항쟁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3.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첫 전파를 타다 (1969)

배경: 1960년대 한국은 라디오가 가장 강력한 대중매체였던 시대다. TV 보급률이 낮았던 당시, 라디오는 뉴스와 오락, 그리고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는 핵심 매체였다. 특히 심야 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청취자들에게 음악과 사연을 통해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는 독특한 소통 공간이었다.

내용: 1969년 3월 17일, MBC 라디오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가 처음 방송되었다. '별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될 이 프로그램은 심야 음악 프로그램의 전설이 된다. 이문세, 이소라, 이적 등 수많은 유명 DJ들이 거쳐갔으며, 청취자들의 사연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포맷은 수십 년간 사랑받았다. 한국 라디오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57년이 지난 현재까지 방송을 이어오고 있다.

의미: '별밤'은 단순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넘어 한국인의 밤 문화 자체를 정의한 프로그램이다. 수능 시험 전날 밤, 군대에서의 외로운 밤, 이별 후의 쓸쓸한 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별밤'과 관련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다. 방송 57년을 넘긴 이 프로그램은 한국 대중문화의 살아 있는 유산이다.


4. 정인숙 살해 사건 — 제3공화국을 뒤흔든 미스터리 (1970)

배경: 1970년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의 고급 요정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의 은밀한 사교장이었다. 정인숙(본명 정금지)은 한일회담이 이루어진 최고급 요정 '선운각' 등에서 일하던 25세의 여성으로, 정관계 최고위층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녀의 소지품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 5·16 주체 세력의 명함 26장이 발견될 정도였다.

내용: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 강변도로에 멈춰 서 있던 검은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숨진 정인숙과, 넓적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넷째 오빠 정종욱이 발견되었다. 검찰은 1주일 만에 정종욱을 범인으로 지목했으나, 살해에 사용된 권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유일한 증거는 정종욱의 자백뿐이었다. 정인숙에게는 3살 된 아들이 있었으며, 아이의 아버지는 당시 최고위급 인사로 지목되었다.

의미: 정인숙 살해 사건은 제3공화국 권력층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2010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재조사한 결과, 정종욱의 범행 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성급한 수사 종결, 실종된 권총,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 의혹… 50년이 넘은 지금도 진실은 미궁 속에 있다. 이 사건은 권위주의 시대 권력과 비리의 결탁을 상징하는 대표적 미제 사건이다.


5. MBC, 여의도 시대를 열다 (1982)

배경: 한국 방송의 역사는 1960~80년대를 거치며 급격한 성장기를 맞이했다. MBC(문화방송)는 1961년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해 1969년 TV 방송을 개시한 이후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존 정동 사옥은 점점 늘어나는 방송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방송 시설의 현대화가 절실했다. 마침 여의도가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개발되고 있었고, KBS가 이미 1973년 여의도로 이전한 상태였다.

내용: 1982년 3월 17일, MBC는 서울 여의도에 새로 건설한 사옥에서 본격적인 방송을 시작했다. 여의도 MBC 사옥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방송 설비를 갖춘 현대적 건물이었으며, 대형 스튜디오와 편집실, 뉴스 센터 등을 완비했다. 이로써 MBC는 기존 정동 시대를 마감하고 여의도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후 MBC는 'MBC 대학가요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램들을 이곳에서 제작하게 된다.

의미: 여의도 사옥 이전은 MBC가 명실상부한 한국 3대 지상파 방송의 하나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의도는 KBS와 MBC, 그리고 이후 합류한 여러 방송·미디어 기업들이 모여 한국 방송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다. 2014년 MBC가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로 이전하기까지 32년간, 여의도 사옥은 한국 방송 황금기의 중심지였다.


📌 역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고, 위대한 성취에서 영감을 얻는 것 —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역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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